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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 앞에서

왜 떠나는가: 퇴사하는 이들을 위한 랩소디

by Experience-teller 202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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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쉽지 않았던 여러 개의 관문을 거쳐 취업에 성공한 우리는 왜 떠나려 하는가?

 

조직에의 적응에 실패해 낙오자가 된 것만 같고, 연일 들여다보는 SNS에서는 여기저기 젊은 나이에 수십억, 수백억 자산가가 되었다는 포스팅이 넘쳐난다.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스크롤을 내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이미 자정이 넘어있고 나는 또 오늘과 별다를 바 없을 내일을 생각하며 잠들 수 없는 밤을 보낸다.

 

많은 이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15년간 두세 차례 이직을 했던 나에게도 이러한 시간이 있었다. 취업은 힘겨웠고 퇴사는 어려웠으며 이직은 짧게나마 달콤했다. 성장을 기대했고 소수는 성공을 꿈꾸었을 것이다. 쏟아지는 업무의 무게가 때로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며 조직에서의 애매한 관계들은 종종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불편함이었다.

 

 40대 중반 즈음에는 어느 정도 규모의 기업에서 세일즈 팀을 총괄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40대 초반에 그 꿈을 이룬 나로서도 조직을 떠나는 이들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길 때가 있다. 인생 첫 이직을 했던 7년 전을 떠올려보면 ‘관계의 회피‘를 사유로 퇴사를 결정하는 이들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법하다. 다만 그 기억이 온전한 만족감으로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혹은 ’ 그녀‘와 나의 팀원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말이라도 건네게 된다. 그러면서도 어려웠을 결정을 내리고 있는 그대로 내게 털어놔 준 팀원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떠나는 저마다의 이유도 우리의 삶만큼 다양하다. 이에 옳고 그름은 없고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책임만이 남는다. 그것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으면 그뿐이다. 삶을 갉아먹고 있을지도 모르는 조직에서의 관계라는 사슬에 묶여 나를 위한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

첫 직장 동기였던 이들 몇몇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하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7년 전 내가 포기했던 안락함의 대가로 얻은 것이 자신감이었고 자존감이었다는 사실이다. 가끔 지금 이직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깝게 지내는 헤드헌터가 있는지 물어올 때는 작은 쾌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오늘의 아픔은 후에 추억이 되고 훈장이 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오늘을 더 잘 살 수 있다면 ‘떠나는 이유’는 공기를 떠다니는 먼지만큼 가벼울 수 있으니 나를 돌아보는 것에 무게를 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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