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부족한 것이 일정 수준에 오르지 못한 자기 계발 탓인 것만 같아 수십 권의 책들을 쌓아두고 읽고 정리하기를 반복했다. 나는 왜 계속 도망치려 하는 것인지, 좀 안정됐다 싶으면 왜 다시 한눈을 팔게 되는 것인지 누군가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길 기대한 적도 많았다. 지난 15년간 좋은 직장을 두루 거쳐오며 크게 다르지 않은 조직의 생리가 불합리로 설명되었던 나의 이해는 그 공간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강한 욕망에 불을 지폈다. 깊게 생각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때로는 감정에 호소하는 설득의 작업이 '일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모범적이고 생산적인 모습이라 여겼다. 대학생활 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많은 것들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전공과 교양을 아우르는 통합적 지식의 발현이 목적이 아닌 앞으로 속하게 될 경제사회의 일원으로 보다 '잘 살기 위한 것'이었기에 울타리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진출한 풋내기 개척자는 예상과는 사뭇 다른 후진적이고 미개한 문화에 물들기 어려웠다.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당시의 나는 생존을 위해 지배적인 분위기에 빠르게 흡수되었고 때론 비겁한 선택이라는 내면의 아우성을 잠재우기 위해 독주(毒酒)의 마취력에 의존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반복된 시간과 그만큼이나 반복된 행태의 빠른 누적으로 옳고 그름의 판단마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사원'으로 완벽히 적응했고 해야 하는 업무와 더불어 끊이지 않고 내려오는 업무 그리고 인사고과권자의 눈치를 살피며 그가 원하는 적정 수준의 온도와 습도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점점 바보가 되어갔고 건강은 악화되었다. 타들어가는 속내를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보수적이며 폐쇄적인 공간에서 떠도는 소문이란 것은 진실보다 자극적이고 파괴적이었으니 뭇사람의 눈과 귀를 홀리기에 충분했다. 나는 희생양이 되길 원치 않았다.
야근이 끝나기 무섭게 발걸음은 저렴한 실내포차의 구석진 자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봐온 익숙한 녹색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굵은 면발의 라면과 소주 한 병에 토로할 수밖에 없었던 어느 가을날 밤 11시 풍경은 쓸쓸했지만 온전한 해방을 맛보았던 순간이었다. 반복될 내일에 대한 두려움보다 무서웠던 건 변하지 않을 그곳에서의 삶이 언제까지 나의 젊음과 지능과 열정을 잠식해 올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순종적이나 영민하고 사교성 좋은 일개의 실무자는 종종 인정을 받기도, 때에 따라서는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선입선출법에 의해 마땅히 누려야 할 온기를 양보하기도 하였다.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회사라는 곳이 도무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감조차 잡기 어려울 때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내가 처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한 무언가가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의 찬란해야 할 내일을 위한 의협심이라기보다 인간다운 삶을 갈구하는 원초적 욕구에 기인했던 것이었다.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합리적 이성'을 찾기 위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나의 의문은 모든 상황에 따라오기 시작했다. 스스로 자신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허무했고 홀린 듯 지나온 10년이라는 세월이 만들어낸 또 다른 나에 대한 혐오가 일렁였다.
나는 일하기 싫은 사람이었다. 애초에 그런 환경에서 잘 해낼 수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운 좋게 적절한 가면을 찾고 그 정도만큼 통용되는 조직을 찾았으며 비슷한 심정으로 무도회를 즐기는 대다수가 있었으니 나의 본질에 대한 고찰은 어리석은 행동이었고 생존과 순응을 통한 번성만을 꿈인양 안고 살았다. 나는 그렇게 일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백번 양보해도 더 이상은 그렇게 도살장 끌려가는 마음으로 아침을 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온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엄마의 아침상 대신 새벽의 이슬과 찬 공기가 나를 살리는 숨을 불어넣어 주기도 여러 해. 가끔은 이유 없이 떨어지는 눈물이 나의 우울감을 대변해주기도 했다.
무지가 드러나도 배움의 희열이 존재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큰 성공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놀라운 창의성에 자신을 칭찬해줄 만한 무대여야만 했다. 안량 하게 쥐어볼 수 있는 두둑한 지갑 대신 내실이 차오르는 자존감으로 나는 살아가야 했다. 드러내기 좋은 것이 아닌, 스스로가 빛날 수 있는 일의 세계로 나의 두발을 내디뎌야 했다. 처음부터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한때는 같은 공간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어엿한 모습으로 성장한 벗의 위용에 작아지기도 했다. 나는 과연 무엇을 했던 것일까. 왜 나는 그들처럼 꾸준히 가던 길을 가지 못했던 것일까. 여전히 나는 철들지 않은 피터팬이 되길 원하는 것일까. 대체 나는 언제쯤 나의 길을 가게 될 수 있을까. 멈추지 않는 질문과 생각으로 채워가는 깊은 밤의 고요가 매일같이 평온함의 수열이 되기를 희망했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 마치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의 여행임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나의 질문은 처절했으나 슬픔에 차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울부짖는 마음으로 일할 수 없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모닥불 앞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부의 세계 (1) | 2024.01.06 |
---|---|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는가: 나는 무엇이 될 상(相)인가 (1) | 2024.01.06 |
빚과 송금 (1) | 2024.01.06 |
왜 떠나는가: 퇴사하는 이들을 위한 랩소디 (0) | 2024.01.06 |
내려놓고 싶을 때 (0) | 2024.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