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에서 2년여의 시간을 함께했던 팀원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안부 인사 겸 연말 인사를 위해 찾아준 그녀에게 감사했다. 당시 대학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그녀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나는 그야말로 첫 '사수'였던 셈이다.
인터뷰 때부터, 온보딩 교육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늘 긴장한 상태였다. 목소리는 떨렸고 많은 부분에 조심스러워했다. 세일즈를 진행해야 하는 담당자로서 모든 것이 어색하고 힘든 적응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망 거래처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반응에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 신입사원의 패턴을 그녀라고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했던 조언들은 지금의 어려움을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여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첫 직장, 첫 사수와의 사연을 부지기수로 갖고 있는 나로서는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었고 이를 통해 팀원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조직은 나의 기대보다 이성적이고 냉정한 곳이다. 그렇기에 어느 곳에서든 내가 보내는 8시간은 조직과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하고 이는 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충분히 이를 수 있다.
당시 그녀는 영업 상대방에게 유려하게 대응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스크립트에 기반한 기계적인 응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일을 일로만 받아들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이다. 다만 개인적인 인간관계, 조직에서의 네트워킹의 관점에서 보면 응대의 기술향상을 통해 개인의 영역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충분히 마련할 수도 있다. 나는 그녀가 이런 식의 접근을 하기를 원했고 그렇게 가이드 했다.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내가 알려주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그럼에도 그녀의 업무적 성과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매니저의 피드백은 받아들였으나 수행 후 매니징 업(Managing Up)에 대한 과정은 빠져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사회생활을 하는 그녀에게 매니저라는 존재는 너무 어렵고 부담스러운 존재였던 것이다. 본인이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스스로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평가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해가 되었다. 이후 난 그녀에게 가이드를 주기보다 '함께' 연습하는 과정을 매일 반복한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주거니 받거니 주거니 받거니. 이 과정을 통해 그녀는 매니저와의 소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업무를 진행하며 특이사항에 대한 공유를 빠르게 해주었다. 이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현저히 낮춰주거나 빠르게 개선하여 더 큰 문제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했다. 그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일을 즐거워하기 시작했고 재미가 더해지는 만큼 성과의 향상에도 속도가 났다. 그렇게 서로의 바람대로 성장해나갔다.
내가 이직하기 전, 그녀 역시 꽤나 안정적인 규모의 회사에 마케팅 팀원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일 년에 한 번씩 인사평가 시즌이 되면 내가 생각난다는 그녀는 매번, 덕분에 이렇게 잘 지낼 수 있다는 마음 따뜻해지는 인사를 전해온다. 마이크로 매니징에는 많은 관심과 시간 그리고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후배의 성장과 개인적인 성취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수반되면 언젠가는 이를 통해 바람직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은 코칭을 준비하는 조력자 입장에서도 도움이 된다. 팀원을 이해해야 하고 그들의 강점을 발견하는 시간의 누적은, 보다 응집력 있는 팀빌딩에도 도움을 주고 상호 신뢰를 형성하며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한다. 몇 차례 고민과 결정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더 많은 팀원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들 개개인에게 가장 좋은 선택지를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같은 시간을 일한다고 했을 때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강점을 최대한 끌어올림과 동시에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 정도의 인풋 또한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이 과정을 한두 번 경험하고 이전과는 다른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되면 스스로 일하는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다양한 코칭의 방식이 있기에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성장에 진심이라면 이러한 친절한 조력은 사람 간의 관계를 깊게 하기도 하고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한다. 선배된 입장에서 가장 설레이고 바람직한 결과는, 이렇게 받은 후배들이 시간이 흘러 맞이하는 또 다른 후배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좋은 것에는 좋은 것으로 화답하게 마련이다. 기버의 마음을 알게 된 이는 어느 순간 기버의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고 이들이 조직과 타인에 기여하는 흐름을 주도한다. 진정 이러한 삶을 사는 보람은 연봉의 인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풍요로움으로 다가온다.
연말을 보낸 새해 어느 날,
기분 좋은 만남을 약속한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그녀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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