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닥불 앞에서

어쩌다, 초등학생

by Experience-teller 2024. 1. 6.
반응형

일요일 새벽 한 시 반, 원인모를 너의 울음에 나와 네 엄마는 눈이 떠졌다.

 

아마도 본 적 없는 공포스러운 존재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꿈에서 맞닥뜨렸기 때문이겠지. 안아주고 토닥여도 너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고 네 엄마보다 예민한 나는 뒤척이다 세시반에 눈을 떠버렸다. 다시 잠들 수 없음을 알고, 마침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안방 천장을 유영하는 탓에 이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다섯 시가 되기 전에 이불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나마도 내가 옆에 있는지 확인하는 네 왼쪽다리로 한참 동안을 물컹한   위에 올려둔 채 꿀잠을 자는 리츄얼 덕에 머리맡에  E-Book 리더기를 벗삼아  시간 가량을 버텨낸 후였다.(종이책 신봉자에 가까운 나는, 작년   맘먹고 구입한 E-Book 리더기  왼쪽 다리의 옭아맴을 새벽독서의 시작으로 여기며 한권 두권 채워간 날이 많았다.)

 

 

으레 이맘때,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아빠들의 보편적인 생각이겠지만 이런 네가 초등학생이 되어 3일 뒤면 입학식을 한다는 사실에 막연한 축하를 보내기가 쉽지만은 않다. 물론 한동안 네 엄마와 내가 신경이 곤두선채로 너의 앞뒤 옆을 살피며 함께 하겠지만, 학교에 있는 동안엔 그리할 수 없으니 혼자서 채워나가야 하는 시간이 행여 너에게 버거움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고 보니 기시감 같은 이 감정은 대략 7년 전에도 그러했다.

 

 

네 동생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딸이 둘이었으면 하고 바랬었다. 시대적인 영향도 있었겠지. 한 가정을 채우고 있는 아들 딸의 숫자로 금, 은, 동메달로 표현하던 때를 지나왔으니.

바라던 바대로 첫째 딸인 네가 태어나던 2015년 11월 초,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이 네 할머니를 보던 순간 뜨거운 눈물로 터져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다. 14시간 가까이 진통을 하고 자연분만을 한 네 엄마 곁을 난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이 별거 아닌 얘기는 두고두고 써먹기도 한다. 직장 생활하며 월급을 받는 넥타이부대 월급 용사 시절을 나던 때이기에, 또한 많은 선배들로부터 출산의 순간에 옆을 지키지 못해 오랜 시간 하소연을 감내하던 선배들의 얘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기에, 너와 동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지켜보았음은 부모의 역할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겠다는 최소한의 뿌듯함이기도 했다.

 

 

이러한 감정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이 찾아왔으니. 남들 다하는 그런 고민이고 내 뜻대로만 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는데도 매일같이 난 걱정이 됐다. 이쯤 되니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도 떠오른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고 뒤뚱거리며 다니던 때에 우리 집 여기저기 넘어 다니지 못하게 막아둔 가림막을 순간에 넘어와 화장실 입구에 수직으로 머리를 꽂아버린 너 때문에(가 아니고 부주의했던 부모의 탓이겠지. 미안하다) 나와 네 엄마는 사색이 되어 119에 전화를 했고, 다행히 알려준 대로 차분히 응급조치를 했다. 그때의 아찔했던 위기의 순간도 너에게는 그 어떤 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나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자책의 루틴을 벗어날 수 없었다. 네 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놀이의 시간이 학습의 시간으로 치환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네 엄마를 통해 듣는 '요즘 초등학생들의 삶'의 이야기로부터 너를 보호해 줄 구석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저 힘들면 하지 마, 괜찮아하는 안타까움의 말로 나를 위로하고 너의 마음 한편을 지켜낸다. 35년 전, 내가 국민학교를 입학하던 그때에도 너와 비슷했다는 생각이 든다. 소상하게 그때의 일들을 알려주기는 어렵겠지만(아 이쯤 되니 이때부터라도 차곡차곡 아빠의 일기를 모아두었다면, 너에게는 즐거움이고 나에게는 귀한 자료가 되었을 텐데 이건 정말 아쉽다) 학습지를 풀고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동네 친구들과 영어 과외를 했던 일과를 소화한 나의 모습이 지금의 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게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이런 경험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지극히 현실적인 네 엄마와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내가 극명하게 갈리는 의견이 대게 이런 것이다. 제주도 혹은 속초로 내려가 살자는 제안도 했더랬다. 뚜렷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경쟁의 시기를 지연시키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어차피 해야 할 거라는 생각에 나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그러하고.

어차피 해야 하니 한동안은 너의 생각과 감정과 감성을 키워나가는 것에 더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사실 이 제안을 하면서도 찬성의 한 표를 얻어내기가, 빈말로도 그러자는 말을 이끌어내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실감각이 뛰어난 네 엄마의 눈에 유토피아적 삶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플롯의 배경쯤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난 여전히 '언젠가는'이라는 꿈을 안고 산다. 가끔 지칠 때 그런 희망적인 그림이, 애월 앞바다가, 속초의 서퍼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면 홍삼 한 스푼을 양껏 떠먹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엊그제 네 엄마가 '학생 기초 조사서'라는 것을 내밀었다. 우리 때는 가정환경 조사서라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부모의 직업과 학력을 기재하는 곳이 사라졌고, 담임 선생님께 바라는 말씀 란이 생겨난 듯했다.

3년 전쯤이었던가. 아빠는 우리 집의 기준을 세워두고 싶었다. 가훈이라고 불리는 그것. 한참을 고민하고 생각하다 기록에도 남겨두었다. 다행이지 싶다. 제사 때 사진으로만 네가 만나온 왕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집 가훈은 "정직, 성실, 근면"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다른 프레임을 주고 싶었고 고심의 결과가 이것이었다.

 

                                                                   5 년전 바인더에서 찾아낸, 우리 집 가훈의 탄생

 

내가 물려줄 수 있는, 물려주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읽고 쓰는 습관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넌 나의 비루한 기관지를 닮아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에 두 번의 수술(중이염과 편도 제거)을 겪게 했구나. 아, 이 얘기도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인데 오늘 남기는 너에게로의 축전과는 결을 달리하는 것 같아 다음 기회를 엿보도록 하겠다.

 

 

아직도 나와 네 엄마는 이 기초 조사서를 끝맺지 못하고 있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너의 장래희망을 적어야 하는데, 여전히 당황스럽다. 우리의 바람대로 너의 희망을 재단(裁斷)하고 싶지 않기에 이곳에 흔적을 남기기가 조심스럽다. 우리는 너에게 무얼 바라고 있을까. 있는 데 못 적는 것인지, 아님 너의 희망대로 살길 원하는 것인지 솔직히 가늠하기가 어렵다.

며칠 전 네 할아버지가 잘 모아두신 내 초등학교 시절의 통지표와 상장들의 스크랩북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웃음이 나기도 울컥하기도 했던 기록들 사이에서 솟아난 아쉬움은 규격화된 삶을 그때부터 나는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타의 모범이 되어....'

 

그래서 난 너에게 바라고 싶다. 모범이 될 것까지 없으니 너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큰 바람 하나 덧붙이자면, 진심으로 건강한 삶을 산다면 부모 된 입장으로 너를 키운 보람에 곱절은 더한 기분일 것 같다. 아프지 말자. 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너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네 그릇의 크기만큼 생각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부족한 것들은 책에서 채워가되 늘 20 정도는 남겨두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 여백이 없음을 오랫동안 경험해 본 아빠는 이제야 사춘기를 겪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서류는 제출해야 하는 것이고, 이 장래희망 란을 어떻게든 채워야 할 텐데 아득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네 엄마의 수고로움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초등학생이 됨을 축하하는 것의 의미는 여럿 있지 않을까 싶지만 단연 으뜸은, 기다리고 믿어주고 기도하고 응원하고 가슴 졸이고 잠못이룬 네 엄마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간들이 모여 이제 너를 조금 더 넓은 곳에서 뛸 수 있게 해주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냥 온 시간이 아니다. 당연히 올 수 있었던 시간이 결코 아니다. 네 엄마의 애씀 앞에선 그 무엇도 티끌이 될 수밖에 없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다른 시작을 앞둔 너를,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게 될 나와 네 엄마를 같이 축하하자. 고맙다. 이 새벽에 글을 남기며 코 끝이 찡해오는 경험을 또 한 번 너로 인해 할 수 있어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