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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홀로서기를 돕는 자

첫 번째 인터뷰: 은행을 퇴사한 후 7년은 어땠나요?

by Experience-teller 202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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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7년밖에 되지 않았다니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은행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직장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는 지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임을 알기에 ‘힘들었다’는 표현은 접어두겠습니다. 후에 은행에서의 8년이 어땠는지 회고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네요. 

 

 
 하루 이틀 고민하고 섣불리 퇴사한 것은 아니었기에 후회가 남지는 않았어요.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은행에 있었다고 해도, 승진이 빨랐다고 해도 지금 받는 연봉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을 받고 있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돈 때문에 한 퇴사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저의 직급은 대리 말 정도였는데 적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이 지쳐있었어요. 우선 몸이 힘들었죠. 과로로 쓰러진 적도 있었고 덕분에 일주일간 입원하고 퇴원해서도 또 일주일간 가료 해야 했습니다. 당시엔 결혼도 하지 않았고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었기에 선택의 폭이 넓었죠. 퇴사하고 세무사 준비를 해볼까 고민했었습니다. 꽤 오랫동안요. 그러다 그간 은행원으로 들인 노력이 아까워 용단을 내리지는 못했습니다.
 
퇴사한 후에는 앞서 말씀드렸듯, 후회보다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저는 방향을 잡고 나오지 않았어요. 무모했고 무책임했다고 볼 수도 있죠. 당시 저의 딸은 태어난 지 6개월 밖에 안되었고 아내는 육아휴직 중으로 집안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는 셈이 된 거거든요. 제가 믿었던 것은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모아둔 예적금과 퇴직금 그리고 제 자신의 잠재력이었어요. 아, 감사하게도 당시 제게는 빚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건 좀 큰 변수였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퇴사 후 양가의 도움을 받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롯이 제가 모아둔 자산을 야금야금 써가며 생활했어요. 
 
정신적으로는 좋은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평일 낮에 돌아다니는 게 왠지 어색하기도 했고, 주위에서 저를 보면 수군거리는 것 같아서 한동안 집에만 있었습니다. 이때 생각하면 제 아내에게는 여전히 미안함이 있습니다. 눈치를 많이 봤을 거예요. 걱정도 됐겠죠, 저에 대한 걱정 그리고 우리 가족에 대한 걱정. 그래도 금세 다시 자리를 잡고 새로운 경험들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 쓰지 않았던 고민과 선택이라는 근육을 사용하다 보니 처음엔 힘들었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조금씩 이런 삶의 방식에 적응도 했고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퇴직이란 옵션을 묻어뒀다면 해볼 수 없는 경험들이었어요. 하지만 정말 어려운 시기가 많이 찾아왔습니다.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건 5년 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에서 안정을 찾게 되었고 당시 청약에도 당첨되면서 삶의 패턴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여유가 생긴 거죠. 태어나 처음으로 대출을 받는다는 상황은 걱정이었지만 이 정도의 대출금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분할상환하면서도 적지 않은 금액을 꾸준히 저축할 수 있단 사실에 감사했어요. 새벽에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뜰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시간의 아픔들을 순간 보상받는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입주한지 반년이 되어가지만, 그래서 여전히 커튼을 달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강한 햇빛은 자연현상의 일부 그 이상의 의미를 주거든요. 
 

 
이런 선물 같은 순간들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은행을 나온 뒤로 난 어떻게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다 보니 이 생각이 입체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 자신을 인정 긍정 사랑해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많이 부족할 테고, 또 어떤 것은 남들보다 뛰어나기도 할 나 자신을 돌보려 애썼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이죠. 상대적인 부족함을 깨닫게 되는 때에는 자책의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계속해서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 했습니다. 부족한 나의 모습도 나일 텐데 이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면 내 존재가치가 사라지는 것일 테니 말이죠. 그리고 나의 사명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내가 지금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인지 오랜 시간 생각해 봤어요. 어떤 일을 하든, 근시안적인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 타인과 세상에 기여하는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정확하게 5년 뒤,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저의 모습은 꽤나 선명합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되고 싶은 성공적인 순간의 모습과 환경 그리고 저의 생활에 대해 매일 적었어요. 상상 속의 이야기에 가까웠지만 '나는 3년 뒤 어떤 삶을 살고 있고, 5년 후에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10년 안에는 이런 집에서 가족과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다'와 같은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규칙 없이 적어 내려갔습니다. 다이어리에 적고 노트에도 적고 책에도 적고 매 순간 긍정하며 감사했습니다. 이런 날이 하루 이틀 그리고 7년이 쌓이다 보니 제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태도가 자신에게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것은, 매 순간 나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거울을 보며 자뻑하지는 않습니다만, 매일매일 오늘도 수고한 나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7년을 났어요.
 
올해 첫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동면에서 깨어난 것 같다’ 힘들었던 모든 순간들이 내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새벽 필사 도중 연기처럼 피어올랐어요. 다행히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저만의 산을 올랐습니다. 과정마다 쉼의 시간도 물론 있었어요. 의욕만 넘치던 시절, 초반부터 오버 페이스를 하며 미친 듯이 달리다가 숨이 넘어갈 듯한 고통에 몸이 따라주지 않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일어서서 또 올랐습니다. 내가 선택한 그 길을 좋은 마음으로 갈 수 있도록 안아주는 마음이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빨리 이러한 삶의 태도와 조언을 해주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수년간 이런 과정을 스스로 찾고 인내하고 실행하고 실패하고 또 반복했기에 지금의 오늘에 이르렀구나 싶습니다. 나를 인정하고 긍정하고 사랑하는 일은 '나'라는 이를 긴 호흡으로 마주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어요. 우선 나를 들여다보는 일에 시간을 쏟아보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고 관심을 가졌고 한때나마 푹 빠졌던 무언가가 있었는지 하나둘 기록해가면서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순수한 나를 만나봤으면 좋겠어요. 내가 소속되어 있는 곳이 어디든, 앞으로 속하게 될 조직이 어떤 곳이든 상관없이 고유한 나는 변하지 않을 테니 나 자신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아는 것은 오롯이 한몫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각자의 기준이 되어줍니다. 그래야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정제되지 않은 군중의 소음 속에서 나 자신을 지켜갈 수 있어요. 그렇게 스스로 고유한 서사를 켜켜이 쌓아간다면 어느 순간 내가 마주할 홀로서기가 두렵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좀 돌아왔네요. 은행을 퇴사한 후 7년은, 제 인생의 모든 방향과 그것을 결정하는 기준 그리고 생각 모두를 바꿔 준 시간이었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그렇지만 가끔 후배들이 저에게 퇴사와 이직에 대해 물어올 때 매번 긍정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분명한데 그것이 지금의 울타리 밖에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뛰어나오는 게 맞겠지만, 지금의 환경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보석 같은 기회들을 없는지 잘 살펴보길 권하는 편입니다. 이 글을 시작하며 인트로에서 언급 드린 바 있지만 7년간 연봉을 3배 이상 높이고 청약에 당첨되어 15억 가까이 되는 부동산 자산을 취득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나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지나온 시간들의 결과물이었다고 생각해요.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은 꿈은 매 순간 갖고 있지만, 제가 집중했던 것은 매일같이 주어진 '하루'였습니다. 그 안에서 저를 잘 돌보려 노력했고요. 넘어지고 주저앉아 울 때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느리게 걸어온 저에게 참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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